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접대의 관습 (문단 편집) === 중국 === 중국의 식문화에는 이 관습의 잔재가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손님이 음식을 어느 정도 남기는 것이다. 중국에선 주인은 음식을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왕창 내오고 손님은 음식을 먹고 최소 모든 음식을 한 번씩 맛은 보지만 어느 정도는 남기는 것이 예의다. 왜냐면 주인은 주인 입장으로 손님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하고, 손님은 음식을 다 먹을 경우 '당신이 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배가 안 부르다', 즉 '''음식을 남기지 않는 건 당신의 손님 접대가 형편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정반대로 서구권 등에선 대접받은 음식을 남기는 것은 실례라 여기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이 중국인의 집에 초대받았다가 음식을 어떻게든 다 먹으려는 손님과 남을 정도로 많이 차려내려는 주인 사이에서 눈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화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중국에선 일단 손님이 오면 음식을 배달을 시키건 식당을 가건 집에서 만들건 아무튼 엄청나게 많이 주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매년 급속히 늘어나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이 때문에 계도성 캠페인으로 음식을 남기는 것은 낭비라고 홍보를 하면서, 과거처럼 일부러 남기는 걸 오히려 칠칠치 못하게 보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국도 과거에 밥을 일부러 남기는 문화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중국도 이와 비슷하게 의식이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 속에서 중국은 이 관습과 관련 있는 '''하나의 계층'''까지 있었다. 전국시대의 식객, [[유협 집단|유협(遊俠)]] 등이 그러한데 이들은 맨몸으로 아무 사람 집에 살면서 거기서 의식주를 제공받는 이들로 그 대가로 자신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일단 생판 모르는 사람을 자기 집에 들여 먹고살게 해주는 건 접대의 관습에 부합한다. 다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전국시대 말기쯤 되면 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식객들이 많이 있는 것이 중요해지게 된다. 집에서 머무르며 의탁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릴 부가 있다는 것임과 동시에 또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정도로 인망과 영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냉병기를 사용하는 시기에 무기를 쥘 수 있는 성인 남성이 많이 머무른다는 건 사실상 사병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전국시대 말기를 풍미한 [[전국사군자]]는 휘하에 많은 식객을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국지에서 나오는 떠도는 객장(客將)을 지방 유력자나 군벌이 식객으로 받아준 이유도 이러한 접대의 관습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지 30여 년이 넘어가는 현대에 들어서도 일부 지방에는 접대 관습이 남아있으며, 심지어 식당에서의 식사 정도라면 도시에서도 더치페이를 하지 않고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40대 이상 연령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관습인데 중국은 10~20대 젊은이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는 소위 '꽌시'(연줄)가 있는 경우에 한한다.] 쓰촨 지역의 청두 외곽 촌마을이나 하얼빈 위쪽 깡촌 지역 같은 곳으로 가면 몽골 못지않은 접대 관습이 여전히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